앤드류 니콜 감독의 영화 호스트

식민지의 뼈 아픈 기록이자 기억, 그 뫼비우스를 끊어내는 법

우연히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영화 호스트를 발견해서 보게 되었는데요. 그런데평점이 낮은 편이더군요...! 채널을 돌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얼마나 별로 인지 제 눈으로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재밌는데?

껍데기만 남은 인간의 몸

이미 지구는 외계생명체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외계생명체(소울)는 인간의 영혼을 완전히 소멸시킨 후 껍데기만 남은 인간의 몸에 기생해 살아갑니다. 소울, 결국 명칭처럼 영혼을 지배하는 자라고 이해할 수 있죠. 이 악몽 속에서도 희망은 있는 것일 까요? 외계생명체의 눈을 피해 땅 속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인간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새로운 인간 세계를 다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주인공 멜라니가 있습니다. 이 삭막한 곳에서도 멜라니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남자친구의 사랑으로 별 다른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멜라니까지도 외계생명체에 의해 몸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녀의 몸을 지배한 외계생명체는 완다였죠.

이질적인 두 존재의 만남

그런데 어느 날부턴 가 완다는 멜라니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멜라니의 영혼이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외계생명체인 완다와 인간인 멜라니의 영혼은 하나의 몸에서 함께 공존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완다는 멜라니에 의해 인간들의 은신처로 들어 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멜라니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을 만나는 내내 멜라니가 지닌 감정들을 함께 공유하게 되죠. 그리고 이 복잡한 감정들은 완다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혼란스럽게 만든 것일까요?

이성과 비이성, 이분법의 논리

외계생명체는 오로지 이성에만 의존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감정에 의해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인간들을 미개하다고 생각해온 것이죠. 마치 우리의 현실에서 동물들이 인간에게 멸시를 받았던 것처럼, 동물과 같은 존재인 인간을 이해하는 외계생명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완다는 인간이 지닌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이성적으로만 판단해 인간을 몰살하였었던 행동들이 잘 못 된 것은 아닐지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완다는 멜라니의 감정을 느끼며 인간의 존재 방식을 이해해 나가게 됩니다. 인간의 경이로운 생존력과 공동체적 질서, 서로 간 신뢰와 사랑결국 완다는 인간의 세계를 체험해가며 왜곡된 논리의 편협성과 메마르고 기계적인 외계인의 삶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영화는 외계생명체가 어떻게 이성적인 논리로 인간들을 지배해 왔고 인간에 대한 진실을 왜곡시키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완다의 편협한 시각이 깨어지고 있음을 색상을 통해 드러내고 있죠. 차갑고 냉혈한 느낌을 주는 실버(Silver)와 화이트(White)는 외계인들의 온기 없는 분위기를 부각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인간들을 묘사함에 있어 따스하면서도 어두운 현실의 분위기를 적절히 표현해 낼 수 있는 세피아(Sepia)를 주로 사용하고 있죠. 이러한 색상 연출법은 하얗기만 했던 사고에 색감을 섞는 방식으로 완다의 고착화된 사고의 틀이 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됩니다.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본 인간

감독은 분명 외계인들의 일방적인 식민 체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본질의 부정적인 측면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죠. 멜라니와 완다는 우연히 한 실험실에 들어가게 되고 그 곳에서 외계인들이 인간에 의해 산 채로 포획되어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실험이 끝난 이 후에는 외계인들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끊어 버리는 야만적인 행태들까지 목격하게 되죠. 약자로 여겨졌던 인간들의 세계, 그 안에는 여전히 파벌이 존재했고 파행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를 목격한 완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던 멜라니는 이제 객관적인 시선에서 인간의 존재를 보게 됩니다.

살생 없는 공존을 선택

이제, 완다는 멜라니의 몸을 다시 돌려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멜라니는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 완다를 살생하지 않고 그녀의 영혼을 살아 있는 상태로 분리해 내는 방법을 찾아 나서죠. 결국 수술법을 알아낸 멜라니 일행은 빼앗겼던 인간의 몸에서 외계인의 영혼을 살생없이 분리해 다시 외계 행성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도맡아 하게 됩니다. 또한 그들은 외계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계심을 버리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합니다.

그런데, 멜라니의 몸에서 분리된 완다의 영혼은 외계행성이 아닌 주인 없는 인간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죠. 사실 완다의 바램도 있었지만 완다를 인간세계에 남도록 도운 것은 인간이었습니다. 완다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외계인인 자신을 돌려보내지 않았으니 말이죠. 그래서 그녀는 왜 이렇게 했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녀에게 답합니다. “너를 살리기(live) 위해서즉 인간들은 이제 외계인인 완다를 그들과 같은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그녀와 함께 사는 것(live)’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멜라니의 감정과 완다의 이해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서로의 감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호 긍정적인 공존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죠.

식민지 역사는 뼈아픈 기록이자, 기억입니다. 하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좀처럼 그 고통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단순히 합의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타자가 느꼈던 감정을 느끼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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